사람과 희망으로 만들어가는, 광명시정신건강복지센터
한국 정신건강 시스템은 여전히 강제적인 시설화 중심의 치료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많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자신이 아닌 타인의 결정에 따라 치료가 이뤄진다는 무력감을 안겨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복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시스템이 있다. 바로 오픈다이얼로그(Open Dialogue, 이하 OD)다.
OD는 아주대병원과 이음병원 공동연구진(교신저자: 김성수 한국오픈다이얼로그학회 공동대표)이 참여한 연구 논문을 통해 한국 정신건강 시스템에서 본격적으로 실천되고 평가된 중요한 사례로 자리잡았다. 이전에도 OD가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었으나, 이번 연구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퀄리티라이츠(QualityRights) 프로젝트와 연계해 체계적으로 적용하고 장기적인 효과를 검토한 최초의 시도로 평가된다.
오픈다이얼로그는 1980년대 핀란드 서부 라플란드에서 시작된 정신건강 서비스 모델이다. 이 모델의 핵심은 정신건강 위기에 처한 사람들과 그들의 사회적 네트워크(가족, 친구, 지원자 등)가 함께 대화에 참여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논문에 따르면 OD는 빠른 개입, 네트워크 중심의 관점, 유연성과 이동성, 책임성, 심리적 연속성, 불확실성에 대한 관용, 그리고 대화적 태도라는 7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OD의 중요한 특징은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로서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이다. 연구에 따르면 “OD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에게 인권을 회복시켜주고, 그들의 결정권을 되찾아주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기존의 치료 모델이 당사자를 주변화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이다.
OD의 첫걸음: 한국 도입
OD가 한국 정신건강 시스템에 처음 도입됐을 때, 많은 전문가와 참여자들에게 생소한 개념이었다. 대부분의 한국 정신건강 시스템은 시설화와 같은 빠른 개입과 즉각적인 조치를 선호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당사자와 가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적인 치료나 입원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OD는 "강제적인 치료 대신 당사자가 스스로 회복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제안됐다.
OD 파일럿 프로그램은 2023년 3월, 한국의 정신건강 전문가와 가족 지원자들로 꾸려진 28명의 참가자와 함께 시작됐다. 이들은 5일간의 워크숍을 통해 OD의 기본원칙과 실천방식을 배우고, 1년간의 네트워크 미팅을 통해 실제 적용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연구에 따르면,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OD의 개념에 대해 “불편함과 의구심”을 느꼈지만, 점차 그 가치를 이해하게 됐다.
문화적 도전: 한국에서의 OD 적용
한국에서는 OD의 도입이 여러 가지 문화적 도전과 마주쳤다. 특히 한국 사회의 "빨리빨리" 문화는 OD의 불확실성을 견디고 천천히 대화를 나누는 방식과 충돌할 수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정신건강 시스템은 빠른 치료와 시설화에 익숙해져 있어 OD의 철학인 '불확실성에 대한 관용'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OD가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워크숍을 통해 OD의 실질적인 가치를 체험한 참가자들은 생각이 바뀌었다. 예컨대 "OD는 단순한 치료 기술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철학을 바꾸는 접근법"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특히 "대화 속에서 다양한 관점을 반영하고 반응하는 과정이 당사자와 그들의 네트워크 모두에게 치유적"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인권 회복을 위한 OD의 역할
OD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인권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정신건강 치료는 당사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그들의 선택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OD는 "당사자가 자신의 회복 과정에서 주체가 되어 자신의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연구에서 참여자들은 OD를 통해 정신건강 위기에 처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삶을 다시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사자는 강압적인 치료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회복의 과정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었다.
또한 연구에 따르면, OD 네트워크 미팅은 "정신건강 위기를 해결하는 데 있어 당사자의 인권을 지키면서도 효과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한 사례에서 당사자가 이웃과의 갈등으로 경찰까지 부르게 된 상황이 있었다. 그러나 OD 네트워크 미팅을 통해 당사자는 강제적인 시설화 대신 자발적인 치료를 선택할 수 있었다.
시설화 대신 인권을 지키는 대화적 접근
전통적인 시설화 중심의 치료는 많은 정신장애인들에게 심리적 외상을 남긴다. 강제적인 입원과 치료는 당사자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그들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다. 그러나 OD는 이러한 강압적 치료를 대신해 "당사자가 자신의 회복 과정에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대화적 접근법"을 제공한다.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OD가 "시설화 없이도 당사자가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언급했다. 이들은 OD 네트워크 미팅을 통해 당사자들이 자신의 삶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그 과정에서 강압적 치료가 줄어드는 것을 목격했다.
OD의 긍정적인 변화
OD를 통해 한국의 정신건강 서비스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OD 워크숍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속도를 존중하는 과정에서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들은 OD가 단순한 치료기법이 아니라, 당사자와 그들의 네트워크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회복의 과정'임을 이해하게 됐다.
특히, 참가자들은 OD가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자율성과 자결권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OD는 당사자가 자신의 삶에서 다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 정신건강 시스템에서의 OD 도입 가능성
한국 정신건강 시스템에서 OD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과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OD가 기존의 시스템과 통합되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과 구체적인 임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OD의 철학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연구는 또한 "정신건강 시스템 내에서 OD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OD가 더 많은 정신건강 위기상황에서 강제적인 시설화 대신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인권 회복을 위한 새로운 길
오픈다이얼로그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다시 주도할 수 있도록 돕는 혁신적인 정신건강 서비스다. 김성수 공동대표와 연구진이 진행한 이번 연구는 OD가 한국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OD는 기존의 강제적 시설화 중심의 치료에서 벗어나, 당사자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그들의 회복을 돕는 대안적 방법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신건강 위기에서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주도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변 네트워크가 함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OD의 철학은, 한국 정신건강 서비스에 중요한 변화를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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